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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정각 12시.
악뮤의 이수현이 이 시각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휴대폰을 방해금지 모드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본인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직접 올린 영상에서 밝힌 이야기입니다. 영상 제목은 'ISTP가 생일을 보내는 방법'. 그는 생일이 시작되는 순간 휴대폰을 꺼 두고, 그날 하루는 혼자 운동을 하거나 조용히 시간을 보낸 뒤, 밀린 답장은 다음 날 한꺼번에 한다고 했습니다. "축하해 주시는 게 너무 감사한데, 하나하나 답장하고 전화 받는 걸 종일 하고 있게 되더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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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영상 보기 →
출처: 이수현 공식 유튜브 채널 · youtube.com/watch?v=tgJn_SBD3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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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한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생일은 1년 중 가장 많은 축하를 받는 날입니다. 휴대폰을 켜 두면 자정부터 알림이 쏟아질 것입니다. 보통은 그 알림의 숫자를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수현은 그 증거를 스스로 꺼 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큐레이터로서 늘 한 가지 질문을 들고 글을 고릅니다. 이 사람의 선택 아래에 관계에 대한 어떤 진실이 깔려 있는가. 이수현의 '휴대폰 끄기'에는 그 진실이 선명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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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의 숫자를 사랑의 증거로 여기는 날, 그는 그 증거를 스스로 꺼 두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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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카톡 100통은, 관계의 수보다 명단의 길이를 보여준다
생일에 받는 축하 메시지를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문장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생일 축하해!" 거기에 케이크 이모티콘 하나. 보낸 사람의 이름을 가리고 메시지만 늘어놓으면, 누가 보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생일 축하는 그 자체로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가볍게 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100통의 메시지가 곧 100개의 깊은 관계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메시지의 상당수는 1년에 한 번 오가는 연락입니다. 카카오톡이 친절하게 '오늘 생일인 친구'를 알려 주고, 그 알림을 본 사람이 버튼 몇 번으로 축하를 보냅니다. 받는 사람도 비슷한 문장으로 답합니다. 그리고 다음 생일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연락이 오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관계라기보다 명단에 가깝습니다. 서로의 연락처에 이름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의 확인입니다. 1년에 한 번, 알림이 시켜서 이름을 한 번씩 불러 보는 것입니다.
명단이라는 말이 차갑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명단은 명단대로 쓸모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들과 한 번이라도 인연이 닿았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명단은 명단일 뿐, 그 자체로 일이나 삶을 받쳐 주지는 못합니다. 받쳐 주는 것은 그 명단 안에서 평소에 살아 움직이는 몇 개의 관계입니다.
이수현이 휴대폰을 끈 진짜 이유가 여기 있다고 저는 봅니다. 답장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한 명 한 명에게 마음을 담아 답하고 싶은데, 명단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100통에 똑같이 "고마워!"라고 답하고 나면, 정작 마음을 담고 싶었던 몇 사람에게도 똑같은 한마디만 보내게 됩니다.
축하가 쏟아지는 날, 그 사람이 오히려 피로를 느낀다면. 그 피로의 정체는 이름만 있는 명단이 길어졌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깊은 관계가 많은 사람은 축하가 쏟아져도 피로보다 반가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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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통의 메시지가 곧 100개의 깊은 관계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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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일'이 되는 관계와, '반가움'이 되는 관계
같은 축하 메시지인데, 어떤 답장은 일처럼 느껴지고 어떤 답장은 반갑습니다. 그 차이는 보낸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평소 무엇이 오갔는가에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생일에만 연락이 닿는 사이라면 답장은 일이 됩니다. 할 말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고마워" 다음에 무슨 말을 더 붙여야 할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안부를 묻자니 1년 치 공백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그냥 끝내자니 성의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짧게 답하고, 답하고 나서도 어딘가 개운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오가던 사이라면 답장은 반갑습니다. 지난주에 나눈 대화의 연장선에서 한마디만 더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축하 고마워, 저번에 말한 그 일은 잘 됐어?"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생일 축하는 이미 흐르고 있던 대화에 찍힌 쉼표 하나일 뿐입니다.
저는 모임을 운영하면서 이 차이를 자주 봅니다. 어떤 분들은 한 달 과정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나도 서로의 소식을 압니다. 누가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 누가 요즘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 사이의 연락은 생일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떠오를 때, 그냥 오갑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분명해집니다. 관계의 깊이는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의 수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락이 오가는가로 측정됩니다.
이수현이 다음 날 밀린 답장을 한꺼번에 한다고 했을 때, 저는 그 말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그는 100통에 똑같이 답하는 하루보다, 자기에게 진짜 의미 있는 시간을 먼저 챙기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명단의 길이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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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의 무게를 정하는 것은 보낸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평소 무엇이 오갔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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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관계를 정리해 본 사람이다
이수현의 선택에서 제가 가장 눈여겨본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는 생일 당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영상에서 그는 그날 운동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끝내 친구들과도 만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루 종일 혼자 보내려 했는데, 친구들이 "안 나오면 쳐들어가겠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다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천천히 보면, 그가 무엇을 한 것인지 보입니다.
그는 자기 생일에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를 스스로 정했습니다. 100통의 알림에 하루를 내주는 대신, 운동이라는 자기 시간을 챙기고, "안 나오면 쳐들어가겠다"고 말해 주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챙겼습니다. 휴대폰을 끄는 행동과 친구를 만나는 행동은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결정입니다. 둘 다 '내 시간을 누구에게 쓸지 내가 정하겠다'는 결정입니다.
저는 이것을 관계를 정리해 본 사람의 태도라고 부릅니다.
관계를 정리한다는 말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람을 끊어 내거나 연락처를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내 시간과 마음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한정된 것을 어디에 쓸지 스스로 정하는 일입니다.
명단이 길어질수록 이 정리는 꼭 필요해집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반응하려 하면 아무에게도 제대로 닿지 못합니다. 이수현이 다음 날 답장을 몰아서 하더라도, 그 답장은 100통에 시달리며 보낸 "고마워"보다 따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시간을 먼저 채운 사람의 답장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일하는 분이라면 이 감각이 더 와닿을 것입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을 명단 전체에 얇게 펴 바를 것인지, 의미 있는 몇 곳에 두텁게 쓸 것인지. 그 선택을 미루면 명단이 대신 정해 줍니다. 알림이 시키는 대로 하루가 흘러갑니다.
평소에 오가는 연락이, 곧 관계자본이다
저는 이런 관계를 관계자본이라고 부릅니다.
관계자본은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의 수와 다른 것을 가리킵니다. 평소에 오가는, 답장이 반가운 관계의 총량입니다. 생일 알림을 보고 떠올린 사람 말고, 그냥 떠올라서 연락하게 되는 사람이 몇 명인가. 그것이 한 사람이 가진 관계자본의 크기입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풍경이 달라집니다.
연락처에 5,000명이 저장되어 있어도, 그 5,000명이 모두 1년에 한 번 생일에만 닿는 사이라면 관계자본은 크지 않습니다. 반대로 평소에 자연스럽게 연락이 오가는 사람이 20명이라면, 그 20명이 곧 그 사람의 관계자본입니다. 숫자는 작아 보여도 이쪽이 훨씬 단단합니다.
왜 단단할까요. 평소에 오가는 관계는 서로의 지금을 알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요즘 무엇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를 알면,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곧바로 연결됩니다. 1년에 한 번 닿는 사이에서는 그 연결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로의 지금을 모르기 때문에, 도울 거리가 있어도 그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생일에 받는 축하의 숫자보다, 생일이 아닌 날 오가는 연락의 밀도를 봅니다. 후자가 그 사람의 일과 삶을 실제로 받쳐 주는 자본입니다.
한 가지를 더 짚고 싶습니다. 관계자본은 한꺼번에 쌓이지 않습니다.
1년에 한 번 100통을 주고받는 것으로는 어떤 관계도 깊어지지 않습니다. 깊어지는 관계는 평소의 짧은 연락이 여러 번 쌓인 것입니다. "그 일 잘 됐어?" "이거 너 생각나서" 같은 한 줄짜리 연락이 1년 내내 오갈 때, 그 사이에 자본이 쌓입니다. 생일은 그 자본이 잠깐 눈에 보이는 날일 뿐, 자본이 만들어지는 날은 아닙니다.
제가 겟백이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자주 보는 장면이 바로 이것입니다. 한 달을 함께 보낸 분들은 과정이 끝난 뒤에도 서로의 지금을 압니다. 생일을 기다려 연락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떠오를 때, 그냥 연락합니다. 그 평소의 연락이 쌓여 서로를 끌어 주는 관계가 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한 가지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사람을 많이 아는 것과 관계자본을 가진 것은 다른 일입니다. 명단은 한 번의 만남으로도 늘어납니다. 행사 한 번, 모임 한 번이면 이름이 수십 개씩 추가됩니다. 그러나 관계자본은 그렇게 늘지 않습니다. 한 번의 만남 뒤에 평소의 연락이 이어질 때, 그제야 명단의 한 칸이 관계자본으로 바뀝니다. 명단을 늘리는 일은 쉽고, 명단을 관계로 바꾸는 일은 평소의 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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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자본이 잠깐 눈에 보이는 날일 뿐, 자본이 만들어지는 날은 평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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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혼자 일하는 당신에게
이 레터를 읽는 분 중에는 혼자 일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1인 사업가, 크리에이터, 프리랜서. 이미 자기 분야에서 자기 일을 단단하게 해 나가는 분들입니다.
이수현 이야기에서 제가 꺼내고 싶은 말은 "사람을 줄이라"가 아닙니다. 휴대폰을 끄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가 보여준 것은 더 단순합니다. 내 시간과 마음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어디에 쓸지 스스로 정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한 가지만 다르게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휴대폰 연락처를 한번 천천히 내려 보십시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이 사람 중에 내가 생일이 아닌 날, 그냥 떠올라서 연락하게 되는 사람은 몇 명인가. 그 몇 명이 지금 당신의 관계자본입니다.
그 명단이 짧다고 해서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관계자본은 평소의 짧은 연락으로 쌓이는 것이고, 그 연락은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요즘 그 일 어떻게 돼 가?"라고 먼저 물어보는 것. 생일도 아니고 용건도 없는 그 한 줄이, 1년에 한 번 오가던 관계를 평소에 오가는 관계로 바꿉니다.
이수현이 생일에 휴대폰을 끈 것은, 명단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먼저 챙기겠다는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명단의 길이를 늘리는 데 시간을 쓰는 대신, 평소에 오가는 관계 몇 개를 두텁게 만드는 데 시간을 쓰는 것입니다.
생일은 1년에 한 번뿐입니다. 그러나 평소는 1년 내내입니다. 관계자본은 그 평소에 쌓입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 중에서, 생일이 아닌 날 그냥 떠올라서 연락하게 되는 사람은 몇 명입니까?
그리고 오늘, 그중 한 사람에게 용건 없는 한 줄을 먼저 보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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